2021 8 31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1937 829일 태어나셔서, 이북에서 혈연단신으로 내려오신 아버님을 만나 결혼하시고 나를 포함한 3자녀를 데리고 남편 따라 미국 땅에 1974년도에 발을 내리셨다. 미국에정착하신지 몇 년 되지않아 남편을 잃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게 되시고 인생의 후반을 다시 시작하셨다. 미국에 오셔서 바로 참석하시게된 산호세 한인침례교회는 믿음의 고향이자 사역의 장소도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어머니와 마주 앉아 직접 혹은 간접 전도한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봤다. 족히 5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계셨고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셨다. 그중에 많은 분들이 아직도 산호세 한인침례교회에 적을 두고 계시고 일부는 다른 교회로 적을 옮겼음에도 새해가 되면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알고 있다.

 

Har-final1학력은 겨우 중학교 수준이시지만 지혜는 어느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으시고, 영어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으시나 어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예수님을 소개하실 수 있는 실력과 배짱. 그리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반도체회사에서 말단으로 일하시면서 밤중에 일을 하면 조금 높은 야간수당을 받기위해 오후에 일을 하시고 밤 12시에 일이 끝나시면 집으로 오시지 않고 교회로 곧바로 가셔서 같이 기도하시는 팀원 분들과 새벽예배까지 마치시고 아침에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나는 보고 자랐다.

 

일생의 후반 42년을 과부로 지내시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남편을 자랑하셨다. 그러면서도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을 그립다 못해 밉다는 표현을 하셨다. 자신이 암4기를 맞으면서 아버님 만날 준비를 하시면서 손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할아버지를 만나면, '당신은 보지도 못한 손자 손녀들에게 집이라도 물려주고 왔다'라고 당당하게 말할껴" 라고 큰소리를 치신다. 그러면서 유언 비슷한 서류를 만들어서 본인이 사인까지 한 내용을 보면 재산을 남기되 언젠가는 이것을 정리해서 세 명의 손자들에게 분배를 하기전에 우선 10%를 헌금하라고 지시하셨다. 자신을 위해서는 사치는 물론 교회 부엌용 재료를 사실 때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깍고 깍아서 싸게 사시는 분이었는데, 자신의 재산에 10% 선뜻 헌금하라고 지시하시는 어머니가 멋있다. 요즘 이 동네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보니 쉽게 백만 불이 넘는다. 40여 년 전 예수님 만난교회, 그리고 평생 섬기신 교회, 이제는 이곳에서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시면서 본인의 신앙을 지키시고, 끝까지 예수인으로 마감하신 것이다.

 

나 자신이 교회에 안수집사로 섬기기 전까지는 새벽예배를 비정기적으로 나왔지만 한가지 확신은 있었다. 어머니의 자리에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 오셔서 기도하신 자리... 요즘은 내가 새벽예배를 나가면서 빈자리를 볼 때마다 더욱더 어머니의 믿음을 존경하게 된다. 음식하시는 것이 취미다 보니 산호세 한인침례교회에서 어머니 음식을 안 먹어본 사람은 없다. 거기에다 고추장, 된장 등 손수 만들고 싱싱한 채소는 본인의 뒷마당에서 직접 길러서 온 교인들을 먹이셨다. 듣기로는 며칠 전 컨디션과 정신이 좀 맑아지는 순간 교인 한 분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을 가지고 가라고 부탁하셨단다.

 

불과 3-4주 전까지도 직접 운전하시고 새벽예배 참석하셨는데... 본인이 맘만 먹으시면 무슨 일이든 하시던 여대장부 어머니가 나에게 대신 지켜달라고 하신 부탁은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께 점심 한 끼 대접 못했으니 꼭...

 

어머니 멋있게 사셨습니다. 어머니 먼저 가셔서 쉬고 계세요 곧 따라갈게요.

 

아들 이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