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7

 

어머니의 김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지난 주일 집에 들러봤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안쪽에서 어머니께서누구야? 여기 있어주형어멈 잘 있고?” 지난 년간 어머니보다 병원 신세를 많이 며느리의 안부부터 물어오신다. 그런데 이제 아무런 소리가 없다. 하다못해 TV 소리도 없고, 그저 찰깍찰깍 돌아가는 벽시계 소리와 조용히 낮은 음으로 자신의 임무를 꾸준히 실행하는 냉장고 소리뿐이다. 이제 어머니의 손때 묻은 가구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때가 것이다.

 

우선은 음식을 정리하기 위하여 냉장고를 열어보니 몇 달 담그신 김치가 그대로 열지도 않고 있.  너무 쉬어서 버릴까 하고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아직도 싱싱하다.  사실 결혼한지 35년이 되기에 아내가 담가주는 김치에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종종 어머니께서 담가주시는 김치이기에 친숙한 냄새다. 이것을 처형이 집에 가져다가 찌개를 만들거나 김치 만두를 하건 가져가자고 하시기에 차에 실어 옮겼다.

 

김치를 옮겨 차에 실으면서 친숙한 냄새를 맡으니 아주 옛날 생각이 난다. 한국에서 국민학교 2학년 때이다. 동네에 있는 재활원 (대부분 고아들 아니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젊은 남자들 20여 명이 모여서 살면서 함께 넝마주이로 동네 종이들을 모아다가 팔아서 생존하는 공동체) 형들이랑 어울려 지낼 때였다. 이들이 나에게 형뻘이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겨울이 거의 끝나가면서 땅에 묻어놓았던 김장김치 항아리를 파내면서 항아리 밑에 있던 김치 찌꺼기라도 형들은 얻어가기를 원했고, 워낙 자신 음식을 나눠주기 좋아하시는 어머니인지라 당연히 나눠주는데 거기에다 이북에서 혼자 내려오신 아버님은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셨다. 기왕이면 맛있는 위쪽에 있는 김치도 나눠주라고... 이렇게 시작된 김치 나누기. 김치를 받아가면서 장남인 나에게 머리를 쓰다들며동네놈들이 까불면 와서 일러, 가서 죽여놓게...” 이렇게 , 아우 관계가 만들어졌다.

 

겨울방학 동안에 논두덩을 막아서 스케이트 장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에게 나를 데리고 가서얘는 여기서 안 내고 타도록 부탁합니다.” 라고 해놓았는데 하루는 주인이 없어 다른 사람이 돈을 받는데 뒷배경을 몰라서 나를 내쫒았다. 시무룩해서 스케이트 끈을 묶어 목에 걸치고 집으로 가는데 하나가 그래 누구랑 싸워서 터졌어? 누구야, 어떤 새끼가 우리 경석이를 건드려자초지종을 듣지도 않고 형은 스케이트장 담당자와싸움이 벌어졌다. 그쪽도 질세라넝마주이 양아치가 지랄이야하며 몰아붙였다.  다음 날 동네가 난리가 났다. 겨울방학 동안에 유일한 놀이터인 스케이트장 얼음 위에 곳곳에 연탄재 덩어리들이 잔뜩 흩어져있어서 할 수 없이 문을 닫고 얼음을 깨뜨리고 물을 펴 날라서 다시 얼리느라 족히 1주일 이상 걸렸다. 그후로 나는 VIP대접을 받으며 스케이트를 타고 엄마에게 받는 스케이트장 입장료는 설탕발라 구운 토스트 그리고 가루 우유를 뜨거운 물에 푼 것을 사서 먹는데 썼다.

 

저녁 시간쯤에 형들이 모여사는 재활원에 가면 우리 집에서 맡는 김치찌개 냄새와 아주 똑같은 냄새가 풍긴다. 형들이 나눠주는 것을 재미있게 얻어먹는데 신기한 것은 밥들이 여러 가지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쌀밥도 있고, 눌은밥 그리고 보리, 잡곡 등등 총천연색/가지각색의 맛있는 밥을 형들과 같이 먹고 집에 가서는 반찬 투정한 기억이 있다.

 

이처럼 어머니의 음식은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고 특히 교회에 가면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거의 있었던 일이다. 특히 토요일 새벽예배 끝나고 아침 식사에는 며칠 전 어머니 집에서 먹은 똑같은 음식에 한 발짝 나아가 나도 듣지도 보지도 그리고 먹어보지도 못하던 나물이 있다. 이것을 많은 교인들이 먹으면서 너무나 맛이 있다고들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나물이냐고 묻는데 나는 대답이 없다. 은근슬쩍 어머니에게 이게 무슨 나물이냐고 물어보면 커다란 소리고묻지마 나물이라 대답해주신다. 정말 가끔은 불안할 때도 있었다. 무슨 풀인지도 모르고 뒤뜰에서 나는 잡초 같은 것도 맛있다고 드시는데 말이 없었다. 워낙 시골에서 자라신 분이라 아시고 드시는 것이겠지 하면서도🙂

 

한번은 선교 사역지인 왈라파이에 어머니 친구 분들 몇 분과 함께 인디언 교회 사모님까지 모시고 비전트립을 갔었다. 며칠 동안 영어도 못하시는 분들이 그저 God Loves You 그리고 God Bless You 외치고 다니시는데 어머니는 동네 사방에 깔린 호박, 과일나무 등을 보시면서 입맛을 다시셨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냥터로 자주가는 곳을 가로질러 Grand Canyon West 향해가는데 갑자기 차를 세우라하셨다. 왜 그러신가 했더니 길가에 냉이가 많아서 저것을 따가지 않으면 잠을 같으니 당장 차를 세우라는 것이었다. 차에 연장도 없었는데 어디서 찾으셨는지 볼펜과 Tire Iron 들고 친구 분들과 함께 30 정도 냉이를 캐고 이것을 커다란 봉지에 담아 가지고 와서는 당연히 우리 교인들 반찬으로 거듭났다.

 

어머니, 천국에 있는 모든 야채는 모두 따서 주위 사람들과 나눠 드세요. 여기 조금 남은 김치는 아무도 안 주고 조금씩 아껴먹고, 언젠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만나스타일의 반찬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