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어머니의 학력

 

새로 취임하신 목사님은 “매일 성경” 새벽예배 사용하신다지난 며칠 말씀은 주로 갈라디아서 중심으로 특히 사도바울이 지적하는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 다루는데 이것에 신경이 쏠린다.

 

어머니는 37년생이시다. 국민학교 당시 해방을 맞으시고, 틴에이저가 즈음 육이오가 터졌다출생지는 김포공항 옆 동네 시골이었고,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글을 깨우치신 분이었다따라서 어머니의 교육 수준은 국민학교 겨우, 알기로는 중학교도 못 마친 아주 저학력자셨다그렇기 때문에라도 대부분의 한국 부모님들과 같이 자식들은 무조건 대학은 마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셨다.  나도 대학 1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학업을 중단하고 직장을 잡았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대학을 끝내지 않을 것이면 당장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말아라”라며 우기셨다.

 

오늘 새벽예배 시 갈라디아서를 읽으며 여러 번 다가오는 단어가 있다.   “초등학문” – 사도바울이 여러 번 사용한 단어를 처음에는 어머니 같은 저학력자 분들에게만 적용되는 단어로 쉽게 생각했고, 나에게는 적용이 안되는 것으로 넘겨짚었다.  그런데 영어로 “Weak and Miserable Elemental Spiritual Force” 읽으면서 의아해지기 시작했다목사님의 설교와 견주어보니 진짜 무식한 나를 돌아보게 된다.

 

master어머니가 나와 동생들 졸업식에 참석은 하셨는데 사진 몇 장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아마도 먹고 살기에 바쁘신 터라 그냥 눈도장 찍는 정도의 졸업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며느리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하니까 주위에 친구들까지 끌고 졸업식에 참석하셨다.  그때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니 졸업하는 며느리 옆에 서서우는 모습이 있었다자신의 자식들 졸업식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으시더니가끔 어머니와 이러저런 신앙 이슈로 대화가 있을때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래, 많이 배우고 영어 잘하는 너희들 맘대로...” 라고 하시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주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가 제시하셨던 의견 쪽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수차례 경험했다그때마다 나는 겸연쩍면서 “아이구 노인네 고집이 고등교육보다 낫네요”라고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사실 며느리는 버클리대 나오고 침례신학대학원에서 종교 교육학 석사까지 공부해서 교회에 전도사로 섬기고, 아들도 천방지축 뛰어다니면서 가주 남침례교단과 침례대학에 이사라는 직함까지 얻어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는 것을 보시면서 한편으로 뿌듯해하시고 한편으로는(이제야 알아차린) 진짜 초등학문 수준의 우리를 보시던 걱정의 눈길이 생각난다.

 

사도바울이 말한 초등교육이 바로 아내와 내가 받은 교육이었다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알고 지키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었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철학을 깨우치고 나름대로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 고등교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이것들을 별 볼 일 없는 초등학문이라 꼬집어 지적한 것이다.   요즘 시대에 사람들이 신학대학원을 나오고, 교단에 이사로 섬기며, 자식 셋을 모두 기독교계통의 국민학교부터 기독교사립대학교까지 보냈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히 믿음이 좋은 행실이라고 말할 있다그런데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짜 초딩들이나 하는 짖이었음을 이제야 솔직히 시인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것을 벌써부터 깨우치시고 며느리와 아들이 아무리 잘난 척하고 날고 뛰어도 절대로 주눅이들지 않고 자신의 굳건한 믿음(우리는 고집으로 착각) 지키셨다.  다시 뒤돌아보면 내가 내린 교회와 관련된 중대한 결정은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그리고 필요할 때는 뒤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도와주셨다.   그리고 나중에나 알게되는 것이 어머니의 입김이 상당히 세다는 것도 시인한다 창피한 일이지만 국민학교때 몇 번 반장을 한 적이 있다그때 반 아이들 몇이 나에게 말하기를 “너희 엄마 치맛바람이 세다”라고 했을 때 자존심이 상했었다그래도 내가 잘나서/똑똑해서 반장 뽑혔는줄 알았는데…

 

어머니 돌아가신지 10일이 되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많은 타이틀이 별 볼 일 없음은 물론 거기에다 어머니 치맛바람 때문이었음을 새삼스레 느껴진다. 앞으로는 교회 집사감도 못 되는 허수아비 예수인을 면하기 위해 초등학문에 의지하지 않고 어머니의 “든든하고 고상한 고등학문- Strong and Gracious Advanced Spiritual Force” 배워야겠다.